1. 생각들을 쓰고 뱉고 토해내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기

2. 온전치 못하다고 느껴져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010726

런던의 여름과 여유로움을 떠올립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공원에 가 플랫 화이트를 주문하고는 마치 일요일의 직장인처럼 따사로운 햇살과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관찰합니다. 지루해지면 잔디에 누워 책을 조금 읽다 집중력이 흐려지면 앞을 보고 내 앞의 풍경과 산산한 바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지만 여전히 그들한테는 나는 언젠가는 떠날 여행객이라는 생각이 자리합니다. 나름 의미있는 교감을 하지만 밋밋한 아쉬움을 남긴채 헤어지고는 합니다. 혼자됨이 사실은 더 편하다는 사실을 느끼며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지하철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저는 한껏 저를 부풀려 바쁜 척을 해야하곤 했었습니다. 여행자였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고, 때로는 직장인처럼, 때로는 학생처럼 무언가 바빠보이고 싶었습니다. 할 일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기 부끄러웠습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고, 현실을 즐기기 위해서 도피해 온 여행지에서는 시간과 돈에 쫓기며 안절부절하고는 했었습니다. 지금 떠올리면 안정감이 없는 생활을 만들어 나 자신을 바쁘게 만드는 행위 자체가 제법 시간을 소모하게끔 만드는 일이었고 한 때의 4개월 동안 얼마나 하는 것 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시간들이 전부였음을 깨닫곤 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놓아도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같았습니다.

좋은 날씨와 좋은 커피, 한적한 공원의 오후, 땀 흘릴 정도의 운동과 해변가에서의 수영, 야외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와인과 좋은 음식.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여행지의 새로움과 신선함을 갈망하기도 하지만 몇번의 불꽃 튀는 시간들 뒤에는 결국 무료함이 찾아왔고 이 새로움도 영원한 것은 아님을, 흘러가는 단계였음을 느끼곤 합니다.

뭐랄까 저는 목적지가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재에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삶의 일부분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목이 터지게 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쉽게 기대합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내게 찾아올 거라는 기대가 저를 소극적이게 만듭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쿨하게 사실은 안될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은 그리 쿨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열등감을 가지고 여전히 비교하고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합니다. 마치 부유하는 이물질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1에 감사합니다. 아침에 감사하고 월요일에 감사하고 1월에 감사하고 무언가 새로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제법 쾌적합니다. 눈뜨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때 웃으면서 눈을 뜹니다. 딱히 한번도 내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많지만 저는 제법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목적지는 없지만 중간에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향해 가다가도 아닌 것 같으면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많이 넘어졌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행복하게 돌아다니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저한테 나중에 남들한테 영웅담처럼, 혹은 배꼽잡을 수 있는 무용담들을 남길 수 있는 경험이라면 그것은 영원하지는 않지만 위험을 무릅쓰고도 선택할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끔은 그런 이야기들에 피식 혼자 웃고는 합니다. 남들한테 재밌게 설명하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했지만 그런 순간들을 저를 살게 합니다. 특별한 순간들 말고도 장면처럼 어느날의 내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여름날 리스본의 노랗던 세라믹 상점가를 거닐던 날들, 정처없이 샌들이 까지도록 걷고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약간의 불안함이 멤돌던 날들이 그립습니다. 그때의 높은 습도, 냄새와 여유로움 속 절박함이 그립습니다. 저는 지금 멕시코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칸쿤의 세시에도 리스본을 떠올리며 그리워합니다. 언젠가는 여름날의 리스본을 그리워하는 칸쿤의 겨울날을 그리워하겠죠. 부조화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그 기억들이 저를 살게 합니다.


요 근래 우리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곱씹어 생각해보곤 합니다. 어린 날에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커플의 사랑이 엄청난 세기의 사랑은 아닌 것 같아 아쉬워하기도, 영화 속 사랑의 모습과 달라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지 의심해보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강력한 스파크가 있지도, 더 이상 매일 달콤한 주문들을 속삭이지는 않지만 때론 아버지가 어머니 생일날 100송이의 장미를 선물하고, 때론 아버지의 애써 밝히고 싶지 않은 걱정들을 알고 있음에도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그런 믿음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합니다.

언젠가 어머니와 한 전화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나 혼자만 살아남으면 되지만, 혼자 하고싶은 것들을 자유로이 하는 것이 삶의 주축이지만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와 관계 사이에서는 관성처럼 다른 것들을 지키고 싶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감이 되지는 않지만 짐작은 됩니다. 나의 사람들, 나의 것이라는 말의 무게는 아직 제법 저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무겁습니다.

책임지고 싶지 않고 그저 가볍고 리듬감 있는 걸음으로 걸어나가는 지금이 좋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쓸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부끄럽지만 여행객의 마음으로 언제든 힘들면 도망칠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어린 날의 저와 오늘의 저도 여전히 도망치고 있습니다. 목적지 없이 허우적거리고는 합니다. 무언가가 구원해줄거라는 같잖은 믿음과 환경을 바꿔보려는 의식적 선택과 현실의 좌절 속에서도 온전한 신체적 자유로움에 행복을 느낍니다. 아직은 조금 더 이런 자유로움을 성숙하게 누려도 될 것 같습니다.


티켓을 마지막 순간에 끊는 (지갑 사정에) 안좋은 버릇이 있습니다. 미국에 올때도 왜 왕복으로 끊지 않고 편도로 끊어 결국 비싸게 가냐고 어머니는 묻곤 했습니다. 이번에 멕시코에 올 때도 너무 늦게 끊어서 몇 백달러는 더 내고 온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상황이 완전히 파악되어야지 결정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생각하고 내뱉지 않습니다. 우리네 세상은 너무나 많은 변수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변수들이 통제되지 않은 선택은 또 하나의 변수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저는 제가 넘치도록 오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칸쿤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오는 항공편은 너무 비싸서 우리는 오버나잇 항공편을 선택했습니다. 숙소비도 아낄겸 몬테레이에서 7시간 레이오버를 하고 그렇게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습니다. 추운 몬테레이의 아무도 없는 공항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시끄러워서 눈을 떠보니 아침 7시가 다 되었었죠. 홈리스처럼 누워있는 제 주변에는 스페인어로 뭐라 이야기하는 멕시칸들이 많았고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이 비몽사몽하게 제 몸이 얼마나 추위를 타고 있는지를 머리로 먼저 인지하고 다음으로 제 몸이 인지를 했던 거 같습니다. 이제는 남들 신경도 안쓰고 대충 두꺼운 아우터를 몇장 걸쳐 입고서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진 상태였고 배는 고팠지만 무언가 찾아서 먹을 정도로 정신이 멀쩡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저 비행기에서 1시간 가량을 자고 나서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습니다.

우버를 불러 호텔로 1시간 반 정도를 이동하는 동안 아침의 추위가 무색하게 태양이 쏘아내리는 햇빛과 선탠이 잘 되지 않은 조수석 사이로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도심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산등성이까지 연결된 판자촌과 그를 도심과 잇는 케이블카,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과 카오스같은 주택가와 상점가들, 뿌연 안개. 저는 제가 바로 멕시코 시티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010725

무언가 뜨거운 불덩이가 저를 떠미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불덩이가 자꾸만 저를 찢어냅니다. 껍질을 벗겨내고 살아내고 저릿하게 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시간을 살아낸다는게 무슨 의미일까요?

문득 초등학교 때의 영어 말하기 대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몇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연필로 한 자 한 자 악필로 발표문을 영어로 적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이걸 다시 타이핑해서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날의 저는 귀찮은 걸 싫어했고 칭얼대며 철없이 어머니한테 시킵니다. 어머니는 조금 투덜거리며 안해줄 것 같이 말씀하시다가 결국은 해주십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쇼파에서 형용하기 힘든 미소를 짓습니다. 당시에는 고마움보다 뭐랄까 애정, 사랑, 그런 것들을 항상 받아오곤 했지만 이런 사소한 순간은 그걸 증명받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어머니도 영어 키보드를 많이 쓰지 않아 독수리 타법이였지만 느리게 한 자 한 자 문서 파일에 담아내십니다. 늦은 오후 해질녘 저는 뒤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귤을 까먹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읽으면 자동으로 타이핑을 해주고, 내공이 생겨 순수 타이핑 자체도 금방 합니다. 뒤돌아 생각하면 어머니의 느린 타이핑처럼 지금 생각하면 금방 할 수 있을 일들이 삶에 많이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노하우가 생겨 비효율을 개선하고 단순히 해당 사건을 했다 / 안했다 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효용이 낮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아련한 초등학교 저학년의 눈에 들어온 건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쌓여온 감정들의 흐름을 느끼는 것이었고 그것이 기억이 되고 시간을 살아내는 온전히 느끼는 제것이 되어온 것 같습니다. 때론 우리는 시간을 통제하고 삶을 제한해야하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뒤돌아 생각하면 시간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된 시간은 되려 허무하고 흐릿하게 느껴지곤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낸 시간의 기억들이 곧 자신이 되고 삶이 됩니다.


012526

한때는 한국 사람인게 싫었다. 가장 아프던 때의 모습이기도, 가장 나를 힘들게 옭아맨 사회이기도 해서 감추고 싶은 정체성이 너무 많았다. 뭔가 특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래서 되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위장해서 어깨를 잔뜩 부풀린채 삶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일어나는 사람처럼 말하고 싶었다.

그러고선 다시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나의 많은 정체성들은 한국에서 쌓아온 것들이고, 그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는 사실을 너무나 인정하기가 한동안 버거웠다. 오랜 시간 전 어느날 밤 내가 좋아했던 그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 국가의 누군가를 애인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도 나도 동시에 그럴 수 없다며 완강히 부정했다.

그는 왜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 사람들이 정치 얘기 하는 것이 싫고,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오만함이 싫고, 비교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나한테 유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는 아무말이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대충 쏟아낸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역으로 그에게 왜 모국의 여자랑 만나지 않을거냐고 물었고,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오만함이 싫다고 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실은,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이 그가 묘사한 싫어하는 이성상의 특질과 겹치는 것들이 많았다. 혐오는 때론 그것이 내 안에 있어서, 너무 잘 알아서 느끼는 거부감이기도 하다.

과거에 가장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었을 때 받은 상처는 더 섬세했다. 상처받은 것들에 대한 거부감은 은연 중에 내가 그런 요소들을 회피하게 만들었다. 회피하고 고개를 돌린 세상은 더 자유로웠고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해방감은 잠시였고 그것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기억들은 무디고 묵직한 상처들로 남고 말았다. 섬세하지 못했다. 모르기 때문에 끌렸고 용감했지만 섬세하지 못한 사랑은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비로소 너무 투명하고 섬세해서 지저분한 사랑이 하고 싶었다.


020826

낯선 곳에서 뒤척이던 수많은 밤들 속에서 끊임없이 빛을 보고 싶었다. 어떤 상황과 환경과 무관하게 행위로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그건 여러번에 걸쳐 허물을 벗겨내는 작업이었고 스스로한테 솔직해지자고 다짐했음에도 여전히 벗겨낼 것이 많았고 그 허물이라는 것의 큰 부분은 타인의 시선이나 물질적인 것들이었다.

올해 그런 것이 찾아왔다. 사실은 알고있음에도 부정해왔다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인 것 같다. 여전히 스스로가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동안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거에 눈을 못 떼곤 했지만, 예술이라는 어쩌면 보여지는 교양의 이미지에 한때는 더 심취해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다보니 진짜가 되었는지 아니면 진짜여서 스스로 속이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시안 가정에서 나고 자란 탓에 예술이 돈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항상 있었고 애석하게도 나는 평생 돈을 벌어도 되지 않을 만큼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진 못해서 금전적인 부분을 빼놓고 생각할 순 없었다. 물론 내가 지금껏 받아온 특권과 교육들에 감사하고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사실 또한 분명 알고 있다.

우리 아빠는 젊은 날 나처럼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많은 걸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뭐 그런 것들. 아빠의 철학 중 하나는 매년 다른 나라로 우리 가족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고 그 덕에 나는 외국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장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덕에 얻은 역마살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세상을 탐험하면 할 수록 갈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여튼, 그렇다 보니 자꾸만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했고, 여러 감각적 요소들에 유난히 민감했던 나는 그래서 여러 형태의 예술이 내 삶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도 같다. 스릴을 쫓고 무언가 불안정한 상태를 쫓고 되려 안정적인 환경에 놓이면 불안해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시간들이 조금 안정되자 처음으로 반복되는 나날들이 정말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인 것 같다. 환경과 무관하게 하고 싶은 것들에 미쳐 사는 것이 두렵지만 행복하다. 찾아 배우는 것이 즐겁고 되는게 없어도 그냥 즐겁다. 한편으로는 정말로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날씨가 정말 좋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하게 많은 요소들이 엉켜있지만 이렇게 만족스러운 순간이 지금껏 삶에서 있었을까 싶을정도로 행복한 것 같다.

최근 읽고 있는 Maggie Nelson 책에서 이런 말을 봤다. 행복할 때는 행복하다고 뱉어내기를 다짐했다고, 그래야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할때, 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무언가 어색함을 느낄 것이라고. 그 어색함과 불편함은 과거의 행복하다고 외친 내가 떠올라서 느껴지는 … (한국어가 잘 안된다… ) there will be a trail of audible testimony in your wake indicating otherwise… 무엇보다 안정된 환경이라고 말은 했지만 도시 자체가 역동적이어서 매일 나조차도 바뀌고 성장한다는 것 또한 느낀다. 그렇다는 사실조차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