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주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상하리만치 비가 잘 오지 않는다.
한쪽으로는 태평양을 끼고 한쪽으로는 캘리포니아의 대자연을 끼고 있는 이곳의 하늘만큼 푸른 하늘을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지난 4달 동안,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대부분이었고, 오전에는 흐려도 12시만 되면 해가 쨍쨍해진다는 믿음으로 오전의 흐린 기분을 위로하곤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굉장히 리버럴한 도시다.
테크의 중심지인만큼, 혁신이라는 가치에 민감하고,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경제 구조를 닮아, 사람들 또한 대부분 진보적인 편이다.
표현에 거침이 없고,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적으로 자유롭다.
사람들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자신의 캐릭터들이 모두 그들의 삶에 공존한다.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장도 잘 마련되어있다.
예를 들어, 메타에서 일하는 헤드 SWE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직종에 바이섹슈얼인 사람들이 많다고 얘기했고, 그들이 그걸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했다.
그가 얘기해준 10월에는 Folsom Street Fair가 있었는데, 아마도 내 생에 그렇게 많은 맨몸을 본 것은 처음이었을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이었고,
도로를 통제하고 자유로운 무대에서 스스로를 뿜어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토록 자유로운 반도이지만, 어찌 인위적이고 외롭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Fidi와 미션, 악명 높은 홈리스촌인 텐덜로인과 헤이즈 벨리의 빅토리안 하우스에서 살면서도
모든 것은 연결되었다는 느낌보다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물씬 든다.
사람들은 가끔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샌프란은 용광로로 섞인 느낌이라기 보다는 되려 비비지 않은 비빔밥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극과 극이 공존해서 어우러지지 못하는.
그래서 여러가지 면모를 볼 수 있지만 심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넘치는 AI 광고와 스타트업 광고, 무언가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
꿈이 있는 사람들이 한탕 해보려고 모이는 곳이었고,
혁신과 새로움을 외쳐서 화려한 껍데기를 갖췄지만 소울은 부족한, 공허한 곳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젊은 날의 나는 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특히나 나 같이 많은 걸 얕은 수준으로만 좋아하는 사람은
때론 예술 분야에서 일하면 즐거울 것 같고, 때로는 공학을, 때로는 전통적 파이낸스를, 혹은 스타트업을
수만가지의 기로에서 문을 두드려보곤 한다.
운 좋게도, 이 도시의 얼마 되지 않는 20대 초반의 사람으로서, 수평적 문화를 지닌 이곳에서
사람들은 나를 환영해주었다.
꿈을 좇기 위해 이곳에 온 이민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더스트리의 탑에 올랐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꿈들을 꾸고는 한다.
얼마전 팔로알토의 IBK 오피스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 학생들과는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입 털어 성공한다고.
내공없이도 용기 내어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 투자를 받고, 그 돈으로 실제 무언가를 만들어 스타트업을 키운다고.
가끔은 이렇게 문을 두드리고 뻔뻔하게 show up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그렇기에 감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올 한해 경험하건데, 이 불편함을 견디고 꾸준히 옳은 방향으로 조정해 나아가다 보면
예상치도 못한 기회들, 인연들이 찾아왔고, 그 덕에 나는 아름다운 시간과 경험들을 쌓아올 수 있었다.
얼마전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았다.
그녀를 보며 떠오른 단어는
optimistic obstinacy
그녀는 27살의 나이로 뉴욕에서 댄서를 지망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철이 없었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쾌락적인 나날들을 보내고는 했다.
친구 소피가 전부였고, 그녀의 그럭저럭한 나날들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히 말해 재능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노력을 엄청나게 하는 건 아니였다.
그녀는 무용단에서 잘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더이상 철이 없는 그녀를 반기지 않는다.
돈도, 집도, 이룬 것 하나 없는 그녀는 그럼에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많은 고생과 눈칫밥을 먹고,
결국에는 무용단의 서류 직업을 맡게 되고 꽤나 안정적인 수입을 챙기며 살아가게 된다.
딱히 해피 엔딩이라고도, 그렇다고 새드 엔딩도 아닌 이 영화는
이뤄놓은게 마땅히 없는 20대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딱한 모습이 나에게도 투영이 되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다움과 세상 사이에서 타협하는 것.
다양한 욕구들 사이에서 중요한 순위들을 알맞게 정렬하는 것.
여전히 다양한 가치와 욕구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젊음의 특권이라 생각하면 아직은 그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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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시작되고, 이 집에 사는 것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큰 창과 햇살, 모카팟으로 끓여 먹는 커피, 잘 알지 못하는 하우스 메이트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루틴 속에서 안정을 찾아나선다.
한주 내내 비가 추적 추적 내려, 마음도 흐려지곤 했는데, 마침내 이브날 아침 고대하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 희열감에 길을 나섰고,
블루보틀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동네 (Hayes Valley) 블렌드를 시키고
햇살이 잘 드는 빵집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다.
오랫동안 잘 읽지 못한 레베카 솔릿의 책에는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We treat desire as a problem to be solved, address what desire is for and focus on that something and how to acquire it than on the nature and sensation of nature, though often it is the distance between us and the object of desire that fills the space in between with the blue of longing.
욕구와 바람을 해결해야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나 자신과 이상과의 거리를 존중하고 그 사이를 느끼는 것.
우리는 나약하다.
세상은 크고, 인간의 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우리가 느끼는 욕망이라는 감정도,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우리를 되려 잡아먹는 소모적인 감정일 수 있다.
가끔은 그냥 간극을 즐기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있다.
방향을 믿고 따르는 것.
내 앞에는 웃고 떠드는 여자 아이들이 있었다.
셀카를 오만장 정도 찍고는, 자연광을 향해 다양한 포즈를 짓고 옆자리의 친구한테 각도가 어떻냐며 조언을 구한다.
소란스러워 조금 신경에 거슬렸지만,
나도 그랬던 시기가 떠올라 추억에 잠긴다.
지금 어른들은, 소위 말하는 ‘성숙한’ 사람들은 보이는 것, 사진에 집착하면 nonchalant 하지 못하다며,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행위를 낮추어 보곤 하는 것 같다.
근데 사실 그 아이들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당장의 상황을 너무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이 깊어진 지금이 좋지만, 때로는 그때의 내가 부럽기도 하다.
커피를 마저 들고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는 햇살을 즐긴다.
거리의 상점에는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오후가 있을까.
이브날 저녁, 집에 가지 않고 도시에 남은 우리들은 이 도시에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T는 둘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Nob Hill 위의 5성급 호텔 장식들을 구경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페어몬트 호텔의 진저브레드 집을 구경하고 미어터지는 인파에 TONGO ROOM 이라는 바에 들어갔다.
테이블 차지로 40불을 받는 위엄에 그냥 스탠딩을 선택했고,
우리는 과거에는 수영장으로 쓰인 이곳에, 물 위에 배를 띄워 남미 풍 공연을 가만히 듣는다.
처음에는 Last Christmas로 시작해서, 이제는 정체 불명 알 수 없는 남미풍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모두 캐롤을 원하는 것 같았고, 가수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레스토랑은 소란스러웠고 더 이상 아무도 노래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는 T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자조적으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칵테일 한잔에 8만원짜리인,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은 이상한 호텔 바의 크리스마스 이브, 캐롤이 나오지도 않고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인 우리 둘의 현실이 너무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더는 들어주지 못하는 음악에, 우리는 종이컵을 3개 집어 들고 나왔고,
와인을 사기 위해 리쿼 샵에 들러 말벡을 사서 캐롤을 크게 틀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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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는 정말 이상했다.
좀처럼 오지 않는 비에, 우산을 들고 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최근 3일째 이어지는 비에 결국은 굴복하고 월그린에 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검은색 우산을 집어들었고, 재질은 좋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날 열린 가게도 없을 뿐더러, 나에게 남은 옵션은 이것밖에 없었기에 계산대로 걸어가 구매했다.
19달러, 이보다 좋은 걸 충분히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대로 만족하고 길을 나선다.
비는 멈추고, 푸른 하늘이 살짝 비친다.
한쪽으로는 콜트레인의 음악을 귀에 꼽고 한쪽으로는 거의 듣기 힘든 빗소리를 느끼며 길을 걷는다.
카스트로를 지나 미션 돌로레스 쪽으로 걸어가자 대마초 쩐내가 나기 시작한다.
빗소리가 소음을 다 먹은 크리스마스 오후 4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길에 나와 있는 건 나와 홈리스뿐.
올해를 반추하며 정신없이 내리막을 걷는다.
문득 올해 방문한 국가의 수를 손으로 세본다.
무려 12곳. 참 정신없이 살았다.
잘 알지 못하는 곳,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나를 탐구할 수 있는 백지와 공간을 제공한다.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나다운게 뭔지 찾아나갔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났으며,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찾아나가기 시작했고,
감정을 배출하는 방법을 배웠다.
찬찬히 올해를 영화처럼 돌려보며 웃음을 머금는다.
길은 섞인 비 웅덩이와, 거대한 낙엽들, 잡동사니들이 나뒹굴고 나는 빠르게 다시 걷기 시작한다.
비는 세차게 쏟아지고 우산을 사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비가 그친 뒤 시원한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비를 피할 곳을 찾는다.
카페는 모두 5시까지,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나는 내가 외딴 곳에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거센 비를 맞으며 불 켜진 곳을 찾기 시작했고, 골목의 한 붉은 바에 발걸음을 멈춘다.
주인 아주머니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메뉴판 소개를 시작하신다.
Mulled wine을 시키고
젖은 옷을 말린다.
그리고 가만히 근처에서 만날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