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덥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글이 예전만큼 잘 안 써진다..
표현을 명확하게 하려고 할 수록 머리에 막혀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영어로 글을 많이 써보려 하지만 그것도 잘 안되고, 두 가지 언어가 섞여서 추상적인 생각들이 한데 엉켜서 묶여있는 요즘이다.
아무튼..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면서도 내 게으름 + ADHD 의 핑계로 돌리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곤 했었다.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 더듬 짚어가며 한국에서 마지막 밤 전 지난 몇달을 이렇게 남겨보고자
다 여기서부터
브릭레인과 해크니에서 바가지 쓰고 산 옷들
소호의 1시간 반짜리 산책과 데이빗 린치
토요일마다 드라마 스쿨을 마치고 정처없이 싸돌다가 들어간 헤로우의 파티
어쩌다 사교계 입성과 프라이빗 클럽에서 쫄던 날들
메이페어의 알프레드 마우어 전시와 키위 큐레이터
csm의 눈물젖은 레코드바
그리고 트라팔가 광장에서 시작된 모든 것들
코트드아주르의 높은 채도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산길
카사블랑카의 we'll always have paris 그리고 그렇게 같이 떠난 파리
퐁피듀센터의 비밀 상영장과 작열하던 태양 그리고 엉켜붙던 우리의 땀 속 갱스부르
물랑로흐의 스트립바와 모자란 불어로 몽마르트에서 속삭인 사랑들
나를 멕시칸같다며 놀리던 날들과 곧 다가올 이별에 유로스타에서 울먹이던 날들
갈 때마다 새로웠던 우리의 노팅힐에서의 럼펀치와 영원하기를 바랬던 밤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우르르 들어가려던 시청 클럽 문 앞에서 함께 도망쳐 마시던 진토닉과 부정교합
나를 라푸푸라고 부르던 그와 러닝하고 수영하고 피우던 제정신이 아니던 브라질의 낮과 밤
선물받은 바이레도 블랙사프란과 레몬 클라라 아사이볼 우리는 완전히 맛이 갔었지
시가와 포르투 응석 받아주기 아름다운 세라믹 내 마음은 여전히 런던이었고
아쉬운 알바로 시자와 리스본 아크릴 물감
33 레코드샵과 +351 파티 신트라 지옥에서 온 바다와 절경
리치몬드 파크 그리고 디어 다시 타워브릿지 우버보트 달라진 긴장감 우리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고
블라인드에서 새어나오는 빛과 포옹 쓰림 삼킴
아직은 완전히 얘기하기 너무 힘든 것들
모두 뒤로하고 이제 앞으로
카오틱 했던 유럽에서의 날들을 청산하고 그렇게 도하를 거쳐 나는 한국으로 왔다.
런던에서 마지막 날들을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가끔 터지기도 했는데
행복해서 그리고 순간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벅차서?
이루고 싶은건 대부분 이룬 시간들이었고
환경이 만들어준 관계가 아닌 취미와 관심사로 뭉친
예술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뭉쳐진 창의적인 사람들과의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리고 어디로 튀어오를지 모르는 에너지와 열기 그리고 그 스파크들 사이로 자석처럼 끌려다니던 시간들
그 속의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염없이 아름다운 시간들
나를 찾을 수 있어서
가장 나다운 순간들은 가장 불편한 곳에서 발견되기 마련이고
그걸 인지하고 표현해내는 순간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새롭게 정의된다.
그곳에서의 우정과 사랑 감정들이 제법 농도가 짙었기에 분명히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었고
그래서 예상보다 한국에 빨리 돌아온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타지에서의 생활에 여로가 쌓였었고
이런저런 상처도 받았었고 그럼에도 집에 돌아오기 싫은건 여전했지만
결국 나는 더 멍청해진 채로 돌아왔다.
물론 긍정적인 표현이다.
수정된 버전의 나 자신을 이 나라에 다시 모시고 와서 보는 풍경은 조금 다를거라고 생각했지만
지리하게 비슷했고 그래서 나는 쉽게 권태감을 느꼈다.
일주일간은
사람들을 만나서 똑같은 얘기하는 것도 그저 그랬고
익숙한 술 마시는 것도 그저 그랬던 거 같다.
나한테는 전혀 새로운 자극이 아니였기에 쉽게 지난 몇달과 비교하게 됐고
그냥 빨리 한달이 지나가길 바랐기도 하다.
런던에서 찾은 내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 그림과 음악 인디 슬리즈에 빠져서 그렇게 꽉 막힌채 나 자신을 더듬어보기 마련이었고
그리움에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했고
뭐가 그리 좋았냐는 말에 쉽사리 답하지 못했던 나지만
느낀게 전부라 그걸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그저 그림만이 곁에 있었지.
사람이 야속한게 그렇게 일이주 뒤 나는 떠날날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소중해지기 시작했지만
노력을 시작했고
서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러 혼자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런던에서 하던 짓을 다시 하니까 즐거웠고 행복했고 좀 더 정제된 내가 있었다 분명히
분명히 한국은 달랐다.
태어난 곳이기도 증오와 애정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고
고마운 기억이 많지만 나의 20대에 한국이라는 곳은 그저 옷장과 짐을 맡기는 역할이 그만인 나라이니
큰 존재감을 내 인생에 끼워넣을 생각은 아직 없고
그저 일년에 한달정도 방문했다는 사실을 체크하고 넘어갈 뿐이다.
다행히도 사랑하는 그들과 나눴던 대화의 숨결들이 한국에도 살아있었고 나의 시야는 넓고 깊었다.
이제 다시 가야할 때
미국은 항상 달랐다.
과거에 비해 퇴색된 명성이지만 매번 갈때마다 다르다
다시 가서도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멍청하게 멍청하게 멍청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표현하니까 아직 철부지 어린이 같지만 맞는데 어떡하지?
철새같고 이기적인 올해다.
한국에서 마지막 밤이다.
그리고
너무 더워서 머리가 잘 안돌아간다.